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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암 수술 64년만에 예수병원 은혜 갚은 어느 88세 할머니.
  • 박은순 기자
  • 등록 2023-10-25 09: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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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형권드림.

 

64년전 죽음의 위기속 위암 수술

품앗이와 날품팔이로 5천만원 기탁.

 

 

"따르릉~~~! "여보세요"! "예수병원 사회사업과인가요"?

 

"~""그렇습니다"

 

"어머니께서 곧 돌아가실 것 같은데 죽기 전에 예수병원에 진 빚을 갚으로 가야 하는데 어떻하면 되지요"?"~"? "선생님 무슨 말씀인지요"?

 

"우리 어머니가 지금으로부터 64년 전 예수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으시고 기적적으로 살아나셨습니다" "제가 해외에 나가야 하는데 어머니께서 그 빚을 갚으러 가자고 한사코 말씀하시어 내일 가려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네ᆢ "무슨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일 오시지요"!다음 날. 예수병원 사회사업과 강종대팀장은 바짝 긴장하였고 홍보팀의 박광진담당은 급히 달려왔습니다.

 

어제 전화 방문을 약속하셨던 분이 휠체어에 어머니를 모시고 방문하였던 것 입니다. 아들은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64년 전 예수병원에서 위암수술을 받으시고 살아나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4년 전 일이니 제가 태어나기 전이지요.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아들은 말을 이어갔습니다. 어머니께서 당시 24살이셨는데 몸이 아파 외삼촌(오빠와)함께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위암이라는 의사선생님의 청천벽력같은 소견을 듣고 망연자실하였습니다.

 

당시 오빠는 생활이 넉넉하였지만 위암이라는 말에 어차피 죽을텐데 돈만 축낼 수 없다며 매몰차게 가버렸습니다. 오빠와 함께 고향인 고창에서 예수병원에까지 왔지만 의사선생님의 위암이라는 말에 오빠는 냉정히 떠나가고 엄마는 돈 한 푼 없이 홀로남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지금은 고창에서 전주까지 1시간30분이면 넉넉한 거리지만 당시에는 비포장 도로로 버스를 하루종일 갈아타고 와야 할 거리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4년전인 1959년도에 위암이라면 먹고살기도 힘든 시기에 삶을 거의 포기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지금과 같이 우수한 내시경 장비나 수술기구및 의사선생님들의 임상경험도 충분하지 않은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위암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휠체어를 타신 88세의 노모는 그때를 회상하시는지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시었습니다.

 

64년전 당시 24살의 나이에 방문한 예수병원의 모습이 이렇게 변해있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노모는 그때를 회상하시며 "오빠와 가족들이 모두 나를 버렸습니다".

 

그때의 서운한 감정이 복받치듯 올라왔는지 잠시 말문을 닫았습니다. 1959년 가을. 24살이었던 노모는 오고갈 수 없는 딱한 처지에 있을때 당시 담당주치의 선생님인 "이집사님"께서 가족같이 따뜻이 대해주고 수술도 무료로 해주시어 그때의 고마움을 단 한번도 잊은적이 없습니다.

 

당시 전북대병원은 있었지만 원광대병원은 1970년에 개원하였습니다. 고창병원은 1993년도에 개원하였습니다. 그러닌까 1959년 전북에는 예수병원과 전북대병원만이 있었을 것 입니다.

 

"당시에도 예수병원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며 돕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병원으로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예수병원에 홀로남은 엄마는 병원에서 알선한 하숙집에서 그날 밤을 하얗게 지새웠습니다.

 

당시 예수병원은 병실이 부족한 가운데 교통이 불편한 먼 곳에서 오는 환자들에게 병원의 지원으로 하숙집을 알선해 주었습니다. 담당주치의 선생님의 노력과 협의하에 예수병원에서는 엄마에게 위암수술을 무료로 해주었던 것 입니다.

 

당시에는 암 수술을 할지라도 열악한 의료환경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기적적으로 완치되었지만 가난속에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습니다. 고향 고창에서 날품팔이와 품앗이등 닥치는대로 논,밭 일을 하면서도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신 예수병원의 고마움을 평생 잊지않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ᆢ "아들아~ 엄마가 죽기 전에 예수병원에 진 수술비와 마음의 빚을 꼭 갚아야 눈을 감을 수 있구나""그동안 엄마는 예수병원에 진 빚만큼은 너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내가 벌어 반드시 빚을 갚아야 눈을 감을 수 있다고 생각했단다"

 

이제 내가 기력이 쇠하여 더 이상 살지 못 할 것 같으니 나를 예수병원에 좀 데려가다오?ᆢ 엄마는 아들에게 간절히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엄마가 작정한 5천만원이 모두 채워졌으니 이 돈을 예수병원에 기탁해다오"

 

아들은 엄마의 부탁을 받고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평소에도 예수병원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기에 이날 엄마를 모시고 64년만에 방문 하였던 것 입니다.

 

사실 엄마는 얼마전에 서울에서 뇌경색수술을 하고 퇴원하였고 건강이 온전치 못한 가운데 예수병원에 진 빚을 갚아야 눈을 감을 수 있다고 서둘렀던 것 입니다.

 

신충식 예수병원장은 이날 두모자를 따뜻이 맞이하였습나다. 이럴 때 의사로써 가장 큰 보람을 느끼며 예수병원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기에 더욱더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였습니다.

 

그리고 64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지않고 찾아주신 어머님께 진심으로감사드리며 예수병원 전 가족은 어머님의 따뜻한 후원을 잊지않고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때의 담당주치의 선생님과 따뜻하게 온정을 베푼 하숙집 막내딸 "정다영"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며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담당 주치의인 "이집사님"은 살아계신다면 100세가 넘으시었고 오래된 병원 의무기록지는 이미 폐쇄되어 지금은 전자기록으로 되어있어 당시의 담당주치의 선생님을 아쉽게도 알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평생의 소원을 들어준 아들은 이제서야 가벼운 마음으로 해외로 떠나기전 죽어서 고향에 뼈를 묻겠다는 어머니는 고창 본가로 모셨습니다. 예수병원은 5천만원을 기탁한 어머니에게 후원자에대한 예우로 감사편지와 함께 감사패를 고창의 자택을 직접 방문하여 전달 할 예정에 있습니다.

 

두 모자는 절대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시며 서둘러 가셨습니다. 필자는 아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해외로 떠났는지 도통 더 이상의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64년 만에 예수병원의 고마움을 평생 잊지않고 그 마음의 빚을 갚기 전에는 절대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노모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5천만 원의 기탁금이 아니라 1천만 원만 기부해도 감사한 마음인데 힘들게 사는 어려운 삶속에서 5천만 원의 작정금을 정하고 기부하는 노모의 천사같은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실 것 입니다.

 

또한 엄마의 평생의 소원과 바램을 무시하거나 저버리지 않고 숭고한 뜻을 받들어 함께 동행한 아들의 착한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필자는 장례문화원과 승화원의 관계자들과 친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나 이름과 권세있는 사람일지라도 죽으면 결국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합니다. 세상을 아등바등 살아가면서 구두쇠처럼 재산을 모았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하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모습은 누구나 똑같다는 것 입니다.

 

지난 필자가 6탄에 걸쳐 올려드린 친구같은 장화홍련전 이야기를 접하고 결국 돈 한푼 제대로 쓰지 못하고 고스란이 죽음을 맞이한 내용에 많은 독자들은 분개하였습니다.

 

차라리 그 많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라도 하고 세상을 떠났으면 억울하지도 않을텐데 학대한 새엄마와 배다른 동생들에게 상속되었다는 것에 씁쓰레한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뉴스를 통해 가슴 따뜻하고 감동적인 소식을 듣게됩니다. 최근 김영석(91) 양영애(83) 부부는 손수레 노점으로 시작하여 과일장사로 평생을 번 재산 400억원을 최근 고려대학교에 기부한 노부부의 삶이 아름답습니다.

 

자식들도 부모의 뜻에 순종하여 "저희를 이만큼 키워주시고 가르쳐주셨으니 우리힘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부모님이 번 재산이니 두 분 뜻대로 하십시요"

 

이 얼마나 훌륭한 성품의 가풍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7년째 신장투석을 받으며 녹록하지 않은 형편 속에 푼푼이 모은 2천만원을 기부한 72살의 최국환씨의 삶이 아름답습니다.

 

가수 이혜영씨는 10억 원의 전 재산을 기부했더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평안이 찾아왔다고 전합니다. 의사가 30년간 진료하며 평생 모은 재산 113억 원을 한동대학교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 장응복원장님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구절처럼 기부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소유의 자가용이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였고 아내가 손수 뜨개질한 옷을 즐겨입었던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한동대의 표어 "배워서 남주자"에 감명을 받아 "벌어서 남주자"로 모토를 정하고 청년들의 미래를 위하여 대학에 기부했다며

 

학생들이 "도움받은 것을 남에게 다시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최근 지난 5일 한국을 방문한 중화권 톱 배우 68세의 주윤발은 자신의 전 재산인 8,100억 원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 세상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니 저는 저녁은 안 먹으니 아침,점심 쌀밥 두 그릇이면 충분"하다고 밝혔습니다.

 

오늘날 오직 물질만을 ?아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이기심으로 살아온 삶들이 정작 삶에 소중한 부분을 놓치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동안 많은 독지가들은 주로 후대를 위해 대학에 대체로 많은 기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생명살리는 일은 더 중요합니다. 돈이없어 병원 문턱한번 밟지못하고 죽어가는 우리가 알지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생명살리는 일에 많은 독지가들이 나설 차례입니다. 돈이 없어 입원이나 수술을 받지 못하고 선뜻 병원에 가지 못하는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병원도 최소한의 운영을 해야하기에 무작정 무료로 치료를 해줄 수는 없기에 독지가들이 기부한 금액을 모아모아서 그분들을 위해서 쓰여지게 한다면 이 세상은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사실 예수병원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병원으로 설립되었기에 독자 여러분들의 기부와 기탁이 더욱 필요한 병원입니다. 오늘 이 아침 64년만에 예수병원을 아들과 함께 찾아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을 꿋꿋이 이겨내시고 마침내

 

위암수술 빚을 갚기위해 평생을 모은 5천만원의 전 재산을 예수병원에 기부한 88세 어머니의 숭고한 정신과 마음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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