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대학교 김동진 교수[독자기고=뉴전북] 금융은 서비스업이다. “MG새마을금고, 누구를 위한 금융인가?”
이 말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돈을 다루지만,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융기관의 신뢰는 금리보다 태도에서, 규모보다 응대에서 형성된다. 그런데 최근 필자는 MG새마을금고의 한 지점에서 그 기본 상식이 무너진 경험을 했다.
필자는 수년간 새마을금고를 주거래 은행으로 이용해 왔다. 여신 상담과 대출을 포함해 7년 넘게 거래하면서 단 한 번의 연체도 없었다. 그만큼 신뢰를 가지고 이용해 왔기에, 지난 1월 22일 전북 완주군 삼례지점을 찾았을 때의 경험은 더욱 당혹스러웠다.
당시 필자는 배우자의 통장 거래내역 확인을 위해 통장 재발급을 요청했다. 배우자의 신분증, 통장에 사용되는 도장, 그리고 본인의 신분증까지 모두 지참한 상태였다. 이전에도 다른 새마을금고 지점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문제없이 발급을 받아왔던 터라, 별다른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삼례지점의 창구 직원은 “정관과 내규상 본인이 직접 와야만 재발급이 가능하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필자는 다른 지점 사례를 설명했고, 최초 통장을 발급했던 지점 직원과 직접 통화까지 연결해 상황을 설명했지만 답은 같았다. 규정이라는 말만 반복될 뿐, 설명도, 공감도 없었다.
이해되지 않아 MG새마을금고 중앙회 전북본부에 문의했다. 확인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회신은 없었고, 다음 날 다시 연락하자 “30분 내 답변을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돌아온 답변은 놀랍게도 “대리 발급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전날 삼례지점의 거절은 무엇이었는가.
필자는 이 과정에서 최소한의 사과나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북본부를 통해 삼례지점 측의 연락을 하셔서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은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고, 얼마 후 삼례지점의 해당 창구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러나 그 통화는 사과가 아닌 또 다른 상처였다. “왜요? 전화해 달라고 하셨다면서요. 무슨 할 말이 있나요?”라는, 마치 고객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인 양 몰아붙이는 태도였다.
필자는 일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다. 그러나 나이 이전에, 고객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더 컸다. 금융기관의 창구에서, 그것도 협동조합을 표방하는 새마을금고에서 이런 응대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전북본부의 대응이었다. 사실관계를 전달했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이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성도,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말도 없었다. 이쯤 되면 감히 묻게 된다. 새마을금고는 고객을 위한 조직인가, 직원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인가.
물론 모든 새마을금고가 이렇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어제 방문한 김제 하나 MG새마을금고에서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창구 직원의 차분한 설명과 친절한 응대로 맞이해 줬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금융을 신뢰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같은 새마을금고 안에서도 지점과 직원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더 문제다.
일부 직원의 불친절이 조직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규정은 고객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지, 고객을 밀어내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규정 해석조차 일관되지 않다면, 그것은 규정이 아니라 자의적 권한 행사에 불과하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특정 직원을 공격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삼례지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함께, 직원을 덮어주기 위한 생쇼는 없길 바란다, 고객 응대에 대한 교육과 관리 체계가 철저히 점검되길 바란다. 금융은 신뢰로 먹고 사는 업종이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만, 다시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MG새마을금고에 묻고 싶다. 지금 당신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규정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그 답에 따라 새마을금고의 미래도 함께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