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이형권
고향을 방문한 귀성객들의 건강한 모습으로 귀경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긴 연휴로 해외 여행 후 오늘 귀국하시는 여행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는 긴 연휴로 인한 일상 복귀에 감각을 잃지않도록 차분한 정리와 생각으로 알찬 10월을 설계해 보심이 좋겠습니다.
● "동화 속 장화 홍련 같은 친구이야기"
※ 4편에서 이어집니다
ㅇㅇ씨 정신 좀 드세요! 하며 이름을 불렀고 이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ㅇㅇ씨 보호자 안 계세요"? 마침 일식당 사장님께서 119로 함께 따라온터라 복도에 서성이다 들어와 간호사에게 환자의 상태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간호사는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서 설명 해 주실 거라 말하며 링거병을 교체하고 사라졌습니다. 사장은 이제 막 정신이 든 친구에게 몸이 언제부터 힘들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친구는 얼마 전부터 숨 쉴때마다 목에서 쉭쉭 ~~! 소리가 나며 숨쉬기가 힘이 들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잠시 후 담당 주치의가 오셔서 하는 말이 오늘은 안정을 취한 후 내일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내일 단체 예약 손님이 있어 본인이 없으면 식당주방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염려가 먼저 앞섰습니다. "선생님 제가 괜찮으니 퇴원처리를 해 주시지요"하며 주치의 선생님께 말하였습니다.
"지금은 안됩니다" "지금 퇴원하시면 또 쓰러질수도 있습니다"라고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강경한 퇴원 요청에 담당 주치의는 그럼 빠른 시일내에 다시 정밀검사를 받기로 하고 퇴원 수속을 허락 하였습니다.
친구는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힘이 들어도 거의 완벽하게 끝 마무리를 하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링거를 맞고 쉬어서인지 집에 돌아오는 길은 몸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땅 값이 10배이상 올랐다는 소식을 들으니 무엇보다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며칠이 흘렀지만 몸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고 병원에 다시 가고픈 마음도 없어졌습니다.
식당은 전체적인 화이트 칼라로 환해졌고 인테리어를 새롭게 한 탓인지 손님들로 북적였습니다.
어느 날~ 일식당 사장은 친구에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하시어 쉬는 날 가게에서 단둘이 만났습니다. 일식당 사장은 커피 두잔을 타오며 자리에 앉더니 말문을 열었습니다.
"김선생 내가 여러번 깊이 생각 해 보았는데ᆢ" "김 주방장이 이 식당을 인수하여 운영하면 어떨까?"ᆢ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아니 왜요?ᆢ "사장님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하며 물었고ᆢ "사실은 집 사람이 "유방암"판정을 받아 "공기좋은 시골에 내려가 요양을 좀 해야 할 것 같아" ᆢ 하시며 경기도 가평에 요양 할 장소도 마련 했다는 것 이었습니다.
"왜요ᆢ! "사모님이 심각한가요"? "응ᆢ 유방암 말기로 병원에서 병원에서 6개월 판정"을 받았는데
"그동안 내가 식당일에 정신이 팔려 집사람이 그 지경이 된 것도 모르고 내가 너무 무심한 것 같아"~! 하며 자책하는 것 이 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돈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아무리 많은 돈도 무슨 필요가 있을까"?ᆢ "공기좋고 물 맑은 곳에서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민간요법이라도 해 볼거라고 "비장한 어조로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사장님 어쩜 좋아요ᆢ"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가계 인테리어는 왜 하셨어요"? "아ㅡ집사람이 공직에 있다보니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최근에 서울대 병원에서 말기암으로 판명받았는데 앞이 캄캄 해 졌다네ᆢ".
사장님 제가 어떤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장님 아시다시피 제가 도곡동에 투자하는라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쩜 좋아요"~
"그거야 알지 알고말고ᆢ" " 돈은 나중에 천천히 주어도되니 김선생이 인수하는게 좋을거라고 생각했다네ᆢ" "전세를 내 놓을까 생각했는데 나는 식당에서 돈은 벌을만큼 벌었고 이참에 집사람과 함께 쉴까 해ᆢ" "김선생은 그동안 열심히 일 해 왔으니 다른 곳에 내 놓는 것보다 맡아서 하는게 나을 것 같아."
"그동안 열심히 도와주어 고맙고ᆢ" 사장의 표정은 어두웠고 비장한 마음으로 어렵게 말을 꺼내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앞 사거리 대형 일식집도 주방장이 인수하여 성공한 가게이기도 했습니다.
사장의 진지한 표정에 한번 생각 해 보겠다고 말하고 헤어졌습니다. 친구는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래 어쩜 나에게는 기회일 수 있겠고ᆢ"
지난 번 도곡동 땅도 이 식당의 손님으로 인해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이 끌렸습니다. 친구는 보름 후 식당 계약을 아주 좋은 조건으로 하였습니다.
일정기간 동안은 월세를 드리고 1년 후 전체 잔금을 치른다는 조건으로 공증까지 마쳤습니다 친구는 생각보다 빨리 자신의 가계를 가지게 되었음을 속으로 "자축"하였습니다.
식당은 인수 후 더욱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은행에 차곡차곡 저축을 하였습니다. 주방장을 새롭게 채용 할만도 한데 모든 손님상에 나가는 음식은 반드시 친구 손을 거쳐야만 비로소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본인의 피로는 누적되어가고 몸은 예전같지않게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부동산 사장님은 여전히 도면과 서류를 가지고 식당을 드나들었습니다.
곧 시행사와 도곡동 토지 계약을 할 계획이니 결정되는데로 서류를 준비하라고 목록을 적어 주었습니다. 식당을 인수하여 이렇게 일도 많아지고 도곡동 땅도 10배가 넘는 가격으로 계약 예정에 있다 보니ᆢ 고향의 이복동생들이 생각났습니다.
나도 이제 기반을 잡았으니 동생들과 함께 일한다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을 했지만ᆢ 생각뿐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동생들의 잦은 고자질로 새 엄마에게 죽도록 맞았고 그런 동생들과는 좀처럼 정이 들지 않아 마치 남보다 못했습니다.
"새 엄마는 왜 나를 그토록 학대했을까"?ᆢ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용서가 안 되었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새 엄마에게 꼼짝을 못하였고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음을 못내 서운해 했습니다.
한편 고향의 아버지는 전봇대일로 인해 허리를 다치셨고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라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동생들은 결혼을 하여 각자의 생활을 하였지만 변변한 직장이 없어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새 엄마는 무릎 수술로 인해 거동이 불편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그 친구 새 엄마는 필자에게 전화를 하여 "우리 큰 아들 ㅇ ㅇ 어디에 사는지 너는 알고 있지"?ᆢ하며 물으시는 것 이었습니다.
"아니요"! "왜 ㅇㅇ와는 지금도 연락이 안되나요"? 하고 반문하였고ᆢ "ㅇㅇ가 집 나간지가 벌써 수십년이 흘렀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모르겠다" 하시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도 큰 아들이라고 보고 싶은 모양이다 하며 생각했습니다. 필자는 "글쎄요"ᆢ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겠지요"? 하면서ᆢ "근데 ㅇㅇ어머니!" "왜 어렸을 때 ㅇㅇ를 그렇게 구박하고 때렸나요"?
아차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왜 ㅇㅇ를 때리고 못 살게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했지"~! 하시며 자조섞인 힘 없는 말로 내 뱉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죄 받는 가보다 하시는 것" 이었습니다. 아 ~ 친구 어머니도 학대 사실을 알고 계시는구나! 친 자식과 그렇게 차별하며 학대했던 것을 이제야 뼈저리게 느끼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너 하고 가장 친했으니 우리 ㅇㅇ가 어디에 있는지 네가 한번 알아보아주렴"? 하며 부탁을 하셨고 필자는" 네! 제가 한번 알아볼께요" 했더니.ᆢ 작년엔가 ㅇㅇ가 친 엄마 묘소에 다녀간 것 같은데 집에도 들리지 않고 그냥 간 것 같아~하시는 것 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 묘소에서 소주 한병과 꽃다발을 발견하고는 지레짐작하여 ㅇㅇ가 다녔갔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이었습니다. 친구 아버지는 허리를 다치시어 몸져 누워있지 새 엄마는 무릎수술로 거동하는데 불편하여 힘든 생활을 하고 계셨고ᆢ 이복동생들은 결혼을 하였지만 직장도 변변치 못하여 형편이 어렵다보니 부모님집에 자주 들를 수 없어 모두가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인과응보라 했던가?ᆢ 당시에는 동네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소위 계모로서의 최고의 악역을 뽐내고 있었으니 후회 할만도 했습니다. 전래동화 장화홍련전의 계모와 비교했을 때 더하면 더했지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는 불이 빨갛게 달궈진 꼬챙이로 얼굴을 맞아 덴 상처가 고스란이 남아 있었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그 악몽이 떠올라 집에는 거울을 일체 놓지 않는다는 그 친구의 말이 떠올라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도곡동 토지 계약이 이루었??고 처음 산 가격보다 무려 13배의 높은 가격으로 시세차익을 누리고 배당을 받아 엄청난 재산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골의 아버지는 얼마 후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그러한 사실도 몰랐습니다.
내일 6탄 마지막회로 이어집니다.